같은 악보라 하더라도 트롯가수가 부르는 것과, 발라드가수가 부르는 것과, 국악인이 부르는 것과는 그 느낌과 맛이 각각 다르다. 같은 연극이라도 그 대본을 연기하는 배우에 따라 관객에게 전해지는 감흥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렇듯 문학이나 예술영역은 중간 역할에 따라 각각 다르게 표현되고 관객의 성향과 주관에 따라 색다르게 느껴진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문화예술의 특성상 오히려 그 다양함이 우리네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마치 같은 김치라도 ‘익은 김치’와 ‘겉저리김치’는 옳고 그름을 시비하거나 충돌하지 않기에 서로 협력하여 우리의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선(善)과 악(惡), 합법과 불법을 구분 짓는 규범과 양심의 영역은 예술영역과 같을 수 없다. 진리와 진실을 전달하는 사람이 자기 감정에 도취된 연기자가 되어서는 절대 안된다. 전달자의 감정 실린 연기에 따라서 코걸이도 되고 귀걸이도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장난에 따라 같은 달이 초생달도 되고 그믐달이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본질이 왜곡되어 전달되면 억울하게 손해보는 사람이 생기고, 그것이 굳어지면 마침내 세상에 치명적인 독이 구조적으로 만연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천륜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전을, 술수와 선동에 능한 ‘짝퉁 성직자’들이 멋대로 왜곡해석하여 혹세무민(惑世誣民)한 결과 세상을 어지럽히고 선량한 백성들의 가정과 인생을 통째로 망친 사례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았던가? 정치모사꾼들에 의해, 사람이나 사건이 왜곡 평가되어 얼마나 많은 불화의 전선을 형성해 왔던가? 부끄러움을 모르는 소인배 협작꾼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삶의 에너지를 도둑맞아 왔던가? 해몽이 꿈을 규정하듯, 진실이 어떻게 해석되고 전달되느냐에 따라 갈등의 불쏘시개가 되기도 하고, 화해의 손길이 되기도 했던 역사적 사실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 대중가요 가사처럼, 우리는 인생에 너무도 중차대한 것을 객관적 검증 과정이 생략된 채, 너무 쉽게 결단해 버린다. ‘묻지 마 편가름’에 너무 익숙하다. 중고 자동차를 사거나, 전세집을 계약할 때도, 발 품을 팔아가며 현지 답사하고 여러 매장이나 중개업소의 정보를 분석하면서 꼼꼼하게 챙기는 우리가, 왜 일생을 좌지우지하는 종교적 관행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편가름이나, 이웃에 대한 애증을 구획하는 결단에는 그리도 쉽게 선동되거나 세뇌되어 분노와 갈등의 도가니에서 스스로 불타는 땔감이 되고 있는 것인가?

‘사실(fact)만으로도 얼마든지 거짓을 조장할 수 있다’

동일한 대상일지라도 좋은 정보만 골라서 나열하면 천사가 되고, 나쁜 정보만 취하면 악마가 된다. 악감정을 부추기는 정보만을 선택적으로 편집하여 거기에 그럴듯한 해석을 붙여서 전하는 것이 선동꾼들의 수법이다. 부정적 감정에 더 현혹되고 더 강하게 반응하는 인간의 본성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이다. 분노와 혐오의 감정을 특정한 대상에게 덧씌워, 반사적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그 수법에 오래 노출되면 우리는 어느덧, 확증편향적 고정관념에 사로잡히고, 객관적 사리 판별 능력을 잃어버린다. 아무리 결정적인 증거가 눈앞에 있어도, 내 감정에 반하는 것이라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 마취효과가 너무 크기에 선거판 네거티브전략이 여전히 되풀이되는 것 아니겠는가?

여기서 우리는 설득과 선동과 세뇌를 분별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설득(說得)은 합리적으로 설명하여 깨우치게 하는 것이고, 선동(煽動)은 부추겨 조장하는 것이며, 세뇌(洗腦)는 아예 사상이나 생각자체를 강제적으로 개조 시키려는 것이다. 안목이 부족하거나 이성적이지 못한 대상일수록 선동이 판을 친다. 설득은 어렵고 선동은 쉽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쉽게 현혹되지 말고 중심을 잡아가자고, 필자는 세상을 향해 권한다.

☞진실여부를 ‘검증’하는 것은 의심병이 아니라 올바른 판단의 ‘필수과정’이다.

☞믿을 만한 정보통이라 할지라도 한 쪽 말만 믿고 곧바로 행동하면 바보되기 십상이다.

☞법이나 권위자의 말을 인용하여 강조할 때는 그것이 그 사람의 해석인지 정말 진실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분노의 목청과 혐오의 어법을 수시로 사용하는 실감나는 연기(演技)에 곧바로 반응하면 후회하기 쉽다. 하룻밤을 지내고 난 이후에 결단해도 결코 늦지 않다.

☞그들이 지목하는 것이 정말 적(敵)인지, 정말 악(惡)인지 제3의 장소에서 바라보며 원점 잡는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다급하게 결단을 요구할 때는 객관적 검증과정을 피하려는 검은 의도가 있을 수 있다.

♥항아리속에서는 결코 항아리 진짜 모습을 판단할 수 없다.

▲윤영호

한국공감소통연구소 대표

‘마음감옥에서 탈출하는 열쇠꾸러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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