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지난 제삿날, 불편하게 헤어지고서 마음이 내내 안 좋았습니다. 정확한 의사전달을 해야겠는데 섣불리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라 생각을 다듬느라고 시간이 많이 흘렀습니다.

다른 분은 모르겠지만 저는 사후세계나 영혼 불멸을 믿지 않습니다. 유교 예법을 지키려는 생각도 없고요. 돌아가신 아버님도 그러셨지요. 살아있을 때 효도하고 나 죽은 다음엔 가끔 너희들이 나 좋아하는 안주로 함께 술 마시면서 잠깐이라도 내 생각 한 번만 해주면 된다고요. 그랬음에도 굳이 제사를 반대하지 않았던 건 어차피 문화라는 게 일조일석에 바뀌지 않을 뿐 아니라 형제 중에 누군가가 원하면 되도록 맞춰주고 싶어서였습니다.

오래 인연을 쌓으며 겪어온 사이고, 시부모님 모시느라 힘들었을 때 함께 그 노고를 알아주고 서로 위로하며 우애를 쌓아온 정이 있어서 더욱 그랬지요. 단순히 시댁 손윗사람에 그쳤다면 훨씬 건조한 관계로 남았을 겁니다. 형님이 부모님 제사를 집에서 지내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인 거 같아요. 아주버님에 대한 사랑과 배려였겠지요. 그 결정은 또 그대로 존중합니다.

애초 역할을 맡을 때 제사와 명절을 두 아들이 나누자고 해서 순순히 받아들였습니다. 며느리를 둘이나 보신 형님이 제사를 가족문화 계승의 빌미로 활용하시려나 했어요. 장자 우선 가족문화에서 자란 아주버님이 제사를 맡는 것도 그럴 수 있다 싶었고요. 저희는 명절에 모임을 주최하기로 했으니 그로써 적당히 나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형님이 혼자 제사음식을 준비하는 것 같아서 당분간 전이라도 좀 부쳐가야겠다 싶었습니다. 이 역시 형님에 대한 제 가벼운 인간적 의리입니다. 누님들도 그래서 뭐라도 거드시는 거 아닌가요? 맡기긴 했는데 혼자서는 일이 많을 거 같으니 서로 십시일반 돕는 거죠. 그걸 가지고 이번엔 누가 뭘 더 했느니 덜 했느니 따지고 들자면 서로 불편해집니다.

형님이 제사를 묵묵히 감내하는 맏며느리인 것은 고마운 일입니다만 다음 세대인 아이들까지 마냥 달가울까 싶어요. 엄마 혼자 고생하나 싶어 애 닳고 나중을 생각하면 부담도 될 것 같아요. 그런 참에 굳이 손위 시누이가 나서서 제사 문화 정착에 앞장서려는 모습이 좀 불편하더군요. 유교 논리로 보자면 누님 역시 출가외인이잖아요. 유교 예법은 이렇게 철저히 남존여비 사상이 담겨 있어 젊은이에게는 아예 받아들여지기 어렵습니다.

제가 전이라도 부쳐가는 건 형님의 부족한 일손을 도와주려는 거지, 제사를 계속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기에 며느리 노릇 어쩌구저쩌구 하면 정말 동의할 수가 없어요. 며느리 노릇도 부모님 돌아가시고 시한 만료입니다. 그나마 모범생이라 끝까지 임무를 수행한 거죠. 그 의무를 제사로 연장할 마음은 없습니다. 형제는 엄연히 부모와 다릅니다. 쌓은 애정이 없으면 억지로 만날 필요도 없는 관계죠. 가끔 만나 옛이야기 하면서 술 한잔 기울이는 건 찬성이지만, 집안 군기 잡겠다고 제사나 명절을 들먹인다면 정말 힘들어질 거 같아요.

그날 이런 제 심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채 이야기가 자꾸 엇나가다 보니 감정만 격해졌어요. 대강대강 다 좋게 넘어왔는데, 이제 와서 철 지난 ‘법도’를 들이미니 마음이 갑자기 옹그라들었나 봐요. 그러는 바람에 너무 오래 생각을 품고 있었네요. 이참에 이렇게 글로나마 마음을 정리하면서 해묵은 감정을 털어내겠습니다. 제일 어린 막내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합니다. 너그러이 이해해주세요.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이사장

-오지랖통신 발행인

-<엄마 난중일기> 저자

-<50이면 그럴 나이 아니잖아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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