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크루아상의 향기가 생각나는 프랑스. 그곳에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를 형상화한 160cm 길이의 한국 빵이 세계인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올해 2월 프랑스 파리 근교 빌팽트에서 열린 제빵 월드컵에서 한국이 우승을 차지한 것. 1992년 시작된 제빵 월드컵은 전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경연 중 하나로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참석해 직접 맛을 볼 정도의 권위를 지닌 대회다. 이 대회에서 한국이 1위를 한 건 사상 처음으로, 우승의 주역은 다름 아닌 동네빵집 사장님들이었다.

 

올해 제빵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한국 팀과 심사위원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주, 가운데 김종호, 오른쪽 두 번째 이창민 제빵사.
올해 제빵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한국 팀과 심사위원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박용주, 가운데 김종호, 오른쪽 두 번째 이창민 제빵사. (사진=박용주)

 

고구려 무용총 수렵도 재현한 우리 빵
심사위원의 입맛과 눈길 동시에 사로잡아

4년마다 열리는 제빵 월드컵은 대륙별 예선을 거친 12개국 대표 선수가 3일간 20종류가 넘는 빵을 구워내며 실력을 겨룬다. 대회가 진행되는 동안 한국 팀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스포트라이트는 프랑스와 일본 등 제빵 강국이 독차지했다. 하지만 마지막 날 극적 반전이 일어났다. 유럽의 빵에 쑥 향을 더하고, 복분자 색깔을 입혀 만든 우리의 빵이 심사위원들의 입맛과 눈길을 동시에 사로잡은 것이다.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를 재현한 작품은 결국 2등인 대만을 압도적인 점수 차로 누르고 한국에 우승컵을 안겨줬다.

“빵 부문에서 국가대표로 세계적인 제빵사들과 겨뤄보는 게 평생의 꿈이었어요. 그 꿈이 이뤄진 것이 꿈만 같습니다.”

제빵 월드컵 우승팀의 일원인 바누아투 박용주(42) 씨는 “엄선된 한국적인 재료와 우리만의 아이디어, 제품의 높은 완성도로 우승할 수 있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겉은 거칠고 속은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못난이 마카롱. 청주 바누아투의 인기 제품 중 하나다.
겉은 거칠고 속은 부드러운 맛이 특징인 못난이 마카롱. 청주 바누아투의 인기 제품 중 하나다.

 

한국 대표팀으로 참가한 박용주(청주 바누아투), 이창민(대전 하레하레), 김종호(대전 슬로우브레드) 씨는 제빵계에서 함께 몸을 담고 있는 선후배 사이다. 제빵을 시작한 20여 년 전 꿈꿨던 제빵 월드컵 출전이라는 공통된 꿈을 위해 세 동네빵집 사장이 뜻을 모았다. 그들은 이번 대회를 위해 지난해 5월부터 틈틈이 합숙훈련 등을 하며 불철주야 빵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또 제빵 월드컵 대회에서 사용할 주요 재료는 직접 국내에서 공수했다.

“쉽지 않았죠. 각자 빵집을 운영하면서 틈틈이 대회 준비를 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후회 없이 해보자 마음먹고 대회 준비에 매진했습니다.”

사실 대회가 열리기 전에는 베이커리 강국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강국과 일본, 대만 등 쟁쟁한 경쟁국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3일간 매일 4팀씩 경연을 했는데, 마지막 날 경연을 펼친 한국 팀은 앞서 경연을 마친 8개 팀을 보면서 우승을 예감했다고 했다.

“우리가 준비한 것을 실수 없이 보여준다면 우승할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박용주 사장은 이번 우승 결과처럼 이제는 한국 빵도 외국에서 한류의 한 축을 이루며 인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서양이 만난 퓨전 음식은 인기를 얻고 있잖아요. 빵도 마찬가지여서 국내에서 인기 있는 단호박에 크림치즈를 가미한 단호박크림치즈빵이라든지, 데니시에 복분자, 찹쌀을 넣은 복분자데니시 등은 외국인의 입맛도 사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제빵 월드컵에서 이미 인정도 받았고요.”

동네빵집 사장들이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선 동네빵집만의 제빵 시스템을 들었다.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는 빵을 아침에 한 번만 굽지만 동네빵집은 빵을 수시로 구워내요. 그리고 오래 숙성시킨 발효반죽과 첨가물 없는 건강한 재료들을 사용하니까 빵맛이 좋고요. 동네빵집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심혈을 기울여 집중 투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빵 월드컵에 출품된 빵들.
제빵 월드컵에 출품된 빵들.

 

하루에도 몇 번씩 구워내는 것이 맛의 비결
고객 감동시키는 좋은 빵 계속 만들고 싶어

박 씨의 빵집에는 한국적인 재료를 사용한 이색 빵들이 많다. 단호박으로 달콤한 맛을 낸 단호박치즈빵, 복분자의 상큼한 맛이 가미된 복분자 찰데니시, 녹차와 찹쌀이 어우러진 녹차찰빵 등이 대표적이다. 버터와 첨가제 등을 넣지 않고 우리 밀과 각종 견과류로 만든 건강빵도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5명의 제빵사가 쉴 새 없이 빵을 만들며 똑같은 빵을 하루에 서너 번씩 굽는다.

“빵은 하루만 지나도 수분이 날아가서 맛이 달라져요. 똑같은 빵이어도 금방 구운 빵이 훨씬 맛있죠. 저는 가장 맛있는 빵을 손님들에게 맛보게 해드리고 싶어요.”

아파트와 상가가 들어서 있는 충북 청주시 복대동에 위치한 박 씨의 빵집은 평범한 동네빵집처럼 보였지만 쉴 새 없이 나오는 따끈한 빵 냄새, 끊임없이 찾아오는 손님들로 활력이 넘쳤다.

개인빵집을 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다. 3년 전에는 8개의 프랜차이즈 빵집이 생겨 경쟁을 벌이다 보니 운영에 어려움을 맞기도 했다.

박 씨는 그럼에도 결국 고객들의 발길을 되돌리게 한 건 “우리 빵집만의 차별화된 맛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래서 더욱 끊임없이 맛있는 메뉴를 개발하고 연구한다. 그는 시간을 쪼개 전국 곳곳으로 빵집 여행을 떠나고 일본, 프랑스 등 베이커리 강국에 가서 맛있는 빵을 배워오기도 한다고 했다.

“우리 빵집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려면 안주하면 안 돼요. 끊임없이 연구해야 항상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요.”

멀리서도 빵을 찾아 청주까지 찾아오는 손님들까지 생겨 책임감이 더욱 커졌다는 박용주 사장. 그는 앞으로도 청주의 대표 빵집으로 고객들을 맞이하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이 동네에서 고객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좋은 빵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습니다. 그게 제 꿈입니다.”

자료=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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