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날아옴’, 1871년, 알렉세이 사브라소프(1830~1897),캔버스에 유채, 62×48.5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까마귀 날아옴’, 1871년, 알렉세이 사브라소프(1830~1897),캔버스에 유채, 62×48.5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러시아는 샤갈, 말레비치, 칸딘스키의 나라이며, 20세기 초반 세계 모더니즘 생성에 뿌리 역할을 했다. 19~20세기에 걸쳐 폭발적인 예술적 성과를 이룬 러시아 미술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바로 이동파의 활동을 들 수 있다.

1864년 이반 크람스코이를 주축으로 만들어진 이동파는, 지배층에 저항하는 그리고 러시아 현실을 고발하는 사실주의적 화풍을 기치로 내걸고 1871년부터 러시아 전역을 돌며 순회 전시회를 열었다. 예술의 현실 참여를 중요시하였으며, 아카데미 화파에서 혜택받지 못하는 많은 작가들이 이동파 전시를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였다. 또 파벨 트레차코프라는 거부는 이동파의 그림을 콜렉해 주었다.

바로 이런 예술적 시스템이 19~20세기 러시아 미술의 부흥을 이끌어 내는 힘이 된다. 이동파 화가들은 풍속화, 장르화를 주로 그렸지만, 리얼리즘 풍경화 또한 이동파가 만들어 낸 커다란 성과라 할 수 있다.

리얼리즘 풍경 화가들은 진솔한 시선으로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 그 감동의 깊이를 화폭에 표현한다.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최고의 순간이 색채와 어우러져 예술이 되는 리얼리즘 풍경화는, 이동파의 활동을 시작으로 현대에까지 이어져 러시아만의 독특한 리얼리즘 풍경화(무드 풍경화) 장르를 구축하는 쾌거를 만들어 낸다. 현재 러시아 리얼리즘 풍경화는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러시아 리얼리즘 풍경화가 국내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없다. 여기서는 간략하게나마 러시아 리얼리즘 풍경화의 역사를 짚어보고, 위대한 러시아 풍경화 기법이 현대에는 어떤 모습, 어떤 작품으로 남아 있는지 살펴보려 한다.

우선 1860대 시작된 러시아 풍경화는 사브라소프에 의해 그 막이 열린다.

사브라소프 이전의 러시아 풍경화는 작가의 의도에 의해 만들어진 아름다운 풍경, 즉 그려질 가치가 있는 틀에 짜인 풍경을 말한다. 현실의 모습보다는 이상향적인 틀을 가지고 있는 풍경화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사브라소프에 들어 러시아 풍경화는 새로운 도전과 성과를 이뤄낸다. 우선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 평범한 자연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일년 중 반 이상이 추운 겨울인 러시아지만 사계절의 변화와 시기마다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러시아의 자연을 그려낸다. 바로 추위와 혹독한 현실에 헐벗은 조국이지만 그 속에 품고 있는 아름다움을 진솔하게 표현한다. 그리고 이런 작품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또 다른 구심점이 되어 일반 민중의 가슴에 애국심을 일깨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즉 민중화, 풍속화가 현실을 바로 보여주며 시대 구원을 꾀했다면, 풍경화에서는 절대적 미의 기준과 러시아의 변치 않는 아름다움의 클래스를 표현하면서 러시아인의 기본 수준, 국민 의식을 고취시킨다.

그렇게 평범한 자연이 주는 위대함과 작가의 눈에 비친 주관적인 감흥을 더해 러시아 사계를 새롭게 재탄생시킨 일련의 그림을 바로 러시아 무드 풍경화라 하고, 이는 이동파의 주요 방향이 된다. 사브라소프가 그 처음을 열었으며 쿠인지, 쉬시킨, 폴레노프, 레비탄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었고, 현대 러시아 작가들(쿠가츠 가족, 시도로프 등)에게도 그 전통이 이어져 지금도 세계 최고의 리얼리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다. 이런 무드 풍경화에서 느껴지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감정을 단번에 사로잡는다.

사브라소프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계절의 미묘한 변화를 공기의 미세한 떨림으로 표현하고, 쿠인지는 자작나무 숲에 비친 햇빛의 차이를, 쉬시킨은 햇빛과 생명 넘치는 자연의 긍정성을, 폴레노프는 전형적인 도시의 풍경에 밝은 빛을 부여하고, 무드 풍경화의 최고봉을 완성한 레비탄은 러시아 사계절의 아름다움에 철학적 깊이까지 담아 보여준다. 이런 무드 풍경화는 그림 앞에 잠시 발길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며 삶의 근원을 생각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드네프르의 밤., 1882년, 아르힙 쿠인지 (1842~1910), 캔버스에 유채, 104x143cm,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드네프르의 밤., 1882년, 아르힙 쿠인지 (1842~1910), 캔버스에 유채, 104x143cm,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숲속의 아침‘, 1889년, 이반 쉬시킨(1832~1898), 캔버스에 유채, 139x213cm,트레차코프 미술관.
’숲속의 아침‘, 1889년, 이반 쉬시킨(1832~1898), 캔버스에 유채, 139x213cm,트레차코프 미술관.

▲김희은

-갤러리 카르찌나 대표

-<소곤 소곤 러시아 그림 이야기>(써네스트) 저자

-<미술관보다 풍부한 러시아 그림이야기>(자유문고) 저자

-아트딜러 및 컨설턴트

-전시 기획 큐레이터

-러시아 국립 트레챠코프 미술관 러시아 국립 푸쉬킨 박물관 도슨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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