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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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인 '똘레랑스(tolérance)'는 관용이나 너그러움이라는 단어 해석에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의 사회적 가치를 말한다. 1995년 파리의 망명객 홍세화 씨가 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회적 반향을 불렀다. 

똘레랑스는 다름을 인정하는 정신이다.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이 중요하다면 상대방의 그것도 인정하는 것이 기본 정신이다.

똘레랑스 사회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방을 설득하지 못하더라도 헐뜯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개인의 행동이나 사고가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과의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이며 뒤끝이 없다.

28년 전 똘레랑스를 외치던 우리 사회는 여전히 타인의 생각, 신념, 의견을 존중하지 않고 서로 다른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같은 생각을 가지지 않으면 배척하는 이분법적 사고와 획일주의가 만연하고 있다.

이분법적 사고와 획일주의는 편(便)을 가르고 패거리를 만든다. 우리 사회의 편 가르기와 패거리 문화는 이제 고질병을 넘어 중병 수위에 다다랐다. 정치가 그렇고 사회가 그렇다. 편 가르기는 국가, 인종, 지역, 계층, 세대 간에 일어난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정치·사회적으로 동서 지역별, 이대남과 이대녀, 부자와 가난한 자, MZ 세대와 무임승차 세대 등 편 가르기가 극심했다. 직장에서는 어떤가. 학연·지연·혈연 등 줄 서기와 파벌이 판을 친다. 뿐만 아니다. 각종 모임에서도 편가르기로 인한 패거리 현상이 나타난다.

똘레랑스는 관용이다. 프랑스의 똘레랑스와 우리 사회의 관용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똘레랑스는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한 이성적 관용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정(情)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 관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공사(公私) 구분이 되지 않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해석되는 이 말은 특정 이슈에 대해 서로의 생각이 다르면 곧바로 “우리는 남”이 된다. 

정은 따뜻하지만 잔인하다. 감성적 관용의 대표적인 부작용이 편이다. 감정의 찌꺼기가 남아 내 편과 네 편이 생긴다. 생각과 의견이 같지 않으면 편으로 갈라져 내 편이면 끌어안고 네 편이면 철저히 외면한다. 낙인찍기와 왕따가 순식간에 탄생한다. 분열의 서막이기도 하다.

편 가르기는 권력과 관련이 있다. 권력이 부여된 집단은 동호회와 달리 이질적인 군중을 형성한다. 군중 속의 개인은 정의나 가치보다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이끌려 감정에 휘둘리며 자신을 잃어버린다.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인간의 극복하기 힘든 본성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개인 심리에 앞서는 군중심리로 본질을 호도하거나 근간을 흔드는 움직임은 경계해야 한다.

귀스타브 르봉은 그의 저서 ‘군중 심리학’에서 군중 속에 속한 개인의 특징을 몇 가지로 나열했다.

군중 속의 개인은 의식적인 개성이 사라지고 무의식적 성격이 우세하다. 감정과 사상은 암시와 전염 수단에 의해 동일한 방향으로 전환되며 암시된 생각을 행동으로 즉시 변형시키는 경향이 있다. 군중 속의 개인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기를 멈춰버린 자동인형 같은 존재가 된다. 개인심리는 군중심리의 지배를 받아 움직인다.

다양한 가치들이 맞부딪치는 사회에서 똘레랑스는 중요한 가치가 아닐 수 없다.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내 의견 역시 존중받지 못한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고 의견이 같지 않을 때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상대방 이야기에 늘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생은 먼 길이다. 혼자서 갈 수는 없다. 생각은 서로 다르지만 함께 가야 한다. 나태주 시인의 ‘먼 길’로 새해 첫 발을 떼본다.

​함께 가자
먼 길

​너와 함께라면
멀어도 가깝고

아름답지 않아도
아름다운 길

​나도 그 길 위에서
나무가 되고

​너를 위해 착한
바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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