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욕망은 권력의 최정점을 꿈꾼다많은 부분을 희생하면서까지 높은 곳에 있는 권력을 손에 넣으려 안간힘을 쓴다.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이들에게 이쯤에서 그만두고 주변을 돌아보라 충고해도, 인간의 욕망은 그칠 줄 모른다. 결국엔 천륜도, 인륜도 저버리고 끝도 모를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이 권력의 노예가 된 자들이 갖는 속성이다. 부모와 반목하고 형제끼리 칼을 겨누며 부부가 서로 죽이는 권력, 우린 그렇게 권력의 시녀가 되어 비참한 말로를 걷는 수많은 위정자들을 보아 왔다.러시아라고 예외일까?아비가 자식을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독살하
코로나19가 시작된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갑니다. 가뜩이나 21세기 들어서면서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스마트폰까지 등장해서 서로 간의 대화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던 참에 바이러스 팬데믹까지 덮치면서 대화의 단절은 심각한 지경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아직도 여전히 코로나 확진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지만 조만간 위드 코로나(With CORONA)가 시행될 거라는 말이 솔솔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코로나 바이러스는 특히 사람 간의 호흡을 통해 전파되는 것으로 알려져 거의 2년 동안 우리 모두는 갑갑한 마스크를 항시 착용하고 일상생활을 해
배움의 길은 끝이 없습니다. 겸손한 자는 어디서 누구에게나 배웁니다. 교만한 자는 배우기보다 자만심에 빠져 남을 나보다 낫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만나고 책을 통해 선각자들을 만나고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자신을 담금질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강화된 후 대인기피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습니다. 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두문불출하는 사람도 많을 것입니다. 연일 뉴스와 대중교통 방송으로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을 가급적 하지 말라고 하니 자의반 타의반 이제 만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가 지속되면서 관계의 단절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급기야 주변에서 우울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저 안일한 생각으로 설마 조금만 지나면 옛날로 돌아갈 수 있겠거니 생각했는데 벌써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갑니다. 인간은 어김 없이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살아갑니다. 혼자서는 도무지 살아갈 수 없습니다.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군중 속에서 고독을 삼키는 사람도 점점 늘어만 갑니다. 우울증은 도둑처럼 조용히 찾아옵니다. 설마 나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알다라는 단어는 교육이나 경험, 사고 행위를 통하여 사물이나 상황에 대한 정보나 지식을 갖춘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실이나 존재 또는 상태에 대해 의식이나 감각으로 깨닫거나 느끼는 것을 안다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함부로 안다고 말하기가 겁이 납니다. 인간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제발 아는체 하지 말라고 충고 하지만 실상 우리는 모두 자신만은 그렇지 않다고 착각하며 살아갑니다. 자신만이 제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며 삽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제대로 모르면서 남을
코로나19 팬데믹 세상이 된 지 1년 반이 넘어가고 있다. 최근엔 ‘델타변이 바이러스’ 추가 발생으로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또 어떤 형태의 변이된 바이러스가 출현할지 도무지 예측 불가능한 세상에 살고 있다. 지친 일상을 반영이라도 하 듯,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신조어에 이어서 ‘코로나 블루(blue)’라는 신조어가 익숙한 세상이 되었다.20세기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은 인류는 전쟁의 공포를 다시 겪지 않으려고 세계 평화를 목적하는 유엔의 기능을 더욱 강화하면서 혹시나 발생할지 모르는 세계 3차
세렌디피티(serendipity)란 완전한 우연으로부터 중대한 발견이나 발명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특히 과학 연구의 분야에서 실험 도중에 실패해서 얻은 결과에서 중대한 발견 또는 발명을 하는 것을 이르는 말입니다. 최근 들어 세렌디피티는 일상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우리 삶은 모든 것이 계획된 대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신에 가끔 발생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방향이 바뀌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런 예상치 못했던 일이 발생하는 것을 부정적인 마인드와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언제나 부정적인 상황으로 몰아갑니다
[소셜타임스=정은상 기자]누구나 미래를 예측하고 싶어 합니다. 아직 가보지 않은 미래를 미리보기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점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미래 예측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합니다. 특히 요즈음은 유튜브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실시간 방송이나 동영상이 인기를 끕니다. 시장이 미래를 예측해 준다고 믿고 매일 열심히 시장에 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미래 예측은 자신의 몫입니다. 스스로 미래를 예측하고 열어가야 합니다. 사실 시장의 예측은 맞을 가능성보다 틀릴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지난 과거의 수치로 모든 것을 예측하는
인간의 욕망은 권력의 최정점을 꿈꾼다. 많은 부분을 희생하면서까지 높은 곳에 있는 권력을 손에 넣으려 안간힘을 쓴다. 권력을 향해 돌진하는 이들에게 이쯤에서 그만두고 주변을 돌아보라 충고해도, 인간의 욕망은 그칠 줄 모른다. 결국엔 천륜도, 인륜도 저버리고 끝도 모를 나락으로 추락하는 것이 권력의 노예가 된 자들이 갖는 속성이다. 부모와 반목하고 형제끼리 칼을 겨누며 부부가 서로 죽이는 권력, 우린 그렇게 권력의 시녀가 되어 비참한 말로를 걷는 수많은 위정자들을 보아 왔다. 러시아라고 예외일까?바니타스 바니타툼 옴니아 바니타스헛되고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이름이 있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이름을 미리 짓는 경우도 많습니다. 교도소나 군대에서 불리우는 이름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경우에 이름을 불러주면 모두가 좋아합니다. 그냥 인상착의로 키가 큰 사람이라든지 하얀 안경 쓴 친구라고 부르면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수많은 상호작용 속에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관심을 기울인다는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존재를 인정하고 정체성을 부여하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지인들의 이름을 꼼꼼이 기억하였다가 다시 만날 때 불러주는 것 만으로도 원만한 소통을 시
태도(態度, attitude)란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 또는 그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라고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태도는 감사하는 마음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마음 속에 진심어린 감사가 넘칠 때 태도가 달라집니다. 태도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입니다. 예절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태도로부터 출발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는 태도에서 고스란히 나타납니다. 인간(人間)이라는 한자를 살펴보면 사이 간 자를 사용합니다. 태도는 어릴때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그냥 내버려두면 태도가 엉망
우리 삶의 궤적은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그런데 그 선택은 과연 절대적으로 내 주체적인 의지만으로 결정되어지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나나 너나 할 것 없이 그 시절 그 상황에서, 그렇게 선택하고 그렇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선천적으로 또는 살아가면서 각자에게 ‘형성된 경향성’에 지배를 받기 때문이다.그런 의미에서 보면 순수한 자아와 순수한 자유 의지를 칼로 무찌르듯, 따로 떼어내어 구분 지어 바라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길래 ‘자유 의지’라는 말은 신이 가르쳐준 용어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단어라는 것이 오히
본 글은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개인 간의 문제라는 점을 미리 밝혀 둡니다.세상은 진화하는데 아직도 헛소문 뒷담화의 구태는 변하지 않고 있다.헛소문이란 근거 없이 떠도는 가짜소식으로서 대개 험담이다. 문제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소문 자체가 대중의 강력한 미디어로서 세상에 작용하는 파괴력이 크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자주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퍼뜨리며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소문을 쉽게 믿어버리는가? 그러니 많은 사람들이 헛소문의 피해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억울함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극단적
소환(召喚)이란 원래 법률 용어로 법원이 증인이나 변호인 등에게 일정한 일시에 법원에 나올 것을 명령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이 용어가 일반화 되어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억하고 재구성하는 데 사용되고 있습니다. 실패를 소환하라는 말은 처참하게 겪었던 실패 경험을 되살려 성공을 위한 디딤돌로 삼으라는 뜻입니다. 성공과 실패를 놓고 보면 수많은 실패를 딛고 나서야 우리는 가끔 성공을 경험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실패했을 때 그것을 수치스럽게 여기고 잊어버리려고 애를 씁니다.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실패의 축적이 나중에 성공을 가져
지금 같은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는 가까운 친구를 찾아가기도, 오라고 하기도 쉽지 않다. 멋진 무대 공연에, 누군가에게 초대받는다 할지라도 찝찝해서 그 초대에 선뜻 응하기란 역시 쉽지 않다. 이렇게 스스로 단절된 삶과 밋밋한 일상이 지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아~ 옛날이여~” 하며 무기력함 속에 아쉬워만 하면서 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동안 관심을 두지 못했던 일상 속 작은 것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눈을 뜨고, 낙후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았던 선배 조상들의 지혜를 삶의 등대로 삼을 것인가?행복은 주관적 감정이다세상이 아무
결핍(缺乏,lack)이란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누구나 결핍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결핍은 상대적입니다. 절대적인 잣대로 결핍을 잴 수는 없습니다. 결핍은 눈에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으로 나눕니다. 보이는 결핍은 눈에 쉽게 나타나지만 보이지 않는 결핍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의 본성에는 비교하는 속성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인간의 욕망에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은 언제나 돈이 더 필요합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더 높은
지금까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이 가장 분명한 실체인 것처럼 느껴왔고, 우리 눈에 크고 중량감 있는 것일수록 힘센 존재로 여겨왔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처럼, 인간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적의 군사력보다 더 두려운 것이라는 것을 지금 우리는 생생하게 체험하고 있다. 보이지 않기에 동선(動線)을 파악하기 어렵고, 동선을 알 수 없기에 가시적으로 대처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다. 마치 밝은 대낮의 예측 가능한 전면전(全面戰)보다 캄캄한 밤중의 기습(奇襲)이 더 공포스러운 것과 마찬가지라 하겠다.같은 논리로 바이러스를 퇴치하기
현재 전 세계 인구는 대략 78억 명입니다. 20세기 이후 인구는 어마어마하게 증가했습니다. 인류의 시작이 수십만 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기록을 남긴 것은 불과 수천 년 전부터입니다.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인 1820년에는 세계 인구가 겨우 10억 명이었습니다. 100년 전에는 20억 명이었구요. 그러다가 1960년에 30억 명, 1975년에 40억 명, 1987년에 50억 명, 2000년에 60억 명 그리고 2010년에 70억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인구 폭발은 의술의 발달과 수질 개선으로 영아사망률이 낮아지면서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는 경험해보지 못했던 단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온택트 시대가 활성화되었다. 온택트란 비대면을 뜻하는 ‘언택트(untact)’에 온(on)라인 연결이라는 개념이 더해진 뜻으로, 온라인을 통해 소통을 이어가는 방식을 말한다. 회의도 강의도 화상으로 하고, 물건을 사고파는 매개도 실물(off-line) 시장에서 사이버(on-line)시장으로 그 주도권이 바뀐 것이다. 수많은 관중이 동원되었던 각종 방송 공연이나 대회에서도, 현장에 있지 않으면서 모니터에 나타나는 화면상의 수많은
[소셜타임스=정은상 기자]유머(humor)란 남을 웃기는 말이나 행동을 뜻합니다. 젊은이들의 배우자 선택의 조건에 유머스러운 사람이 들어 있습니다. 유머는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합니다. 리더의 유머는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영국 수상을 지낸 윈스턴 처칠의 유머는 전쟁과 가난의 어려움 속에서 영국 국민들이 이겨낼 힘을 주었다고 합니다. 노예 해방으로 유명한 미국의 링컨 대통령의 유머는 자신의 정적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개그맨은 유머에 목숨을 겁니다. 웃겨야 산다가 그들의 모토입니다. 비즈니스맨들의 유머는 거대